4 장

도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내가 화가 났다는 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설마 이혼 이야기까지 꺼낼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는 천천히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희뿌연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한참 침묵하던 그가 비웃듯 말했다.

“며칠 전에는 일하고 싶다더니.”

“이제는 이혼까지 하고 싶어?”

“재벌가 며느리 노릇이 그렇게 지겨웠어?”

“밖에 나가서 세상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그는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나가 봐.”

“월급 몇 푼 받으려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야.”

“청담동 펜트하우스에서 부족한 거 하나 없이 살면서 대체 뭐가 불만인데?”

순간 웃음이 나왔다.

허탈해서.

어이가 없어서.

나는 입술을 깨물며 그를 바라봤다.

“재벌가 며느리?”

“나 같은 며느리가 또 있을까?”

도준의 손목을 붙잡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보석장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화려했다.

하지만 모두 잠겨 있었다.

비밀번호조차 나는 몰랐다.

모든 관리 권한은 김비서에게 있었으니까.

나는 캐비닛을 가리켰다.

“어느 집 며느리가 자기 쥬얼리 하나 꺼내 쓰는 데 비서 허락을 받아?”

“어느 집 아내가 돈 한 푼 쓰는데 승인 절차부터 거쳐야 해?”

“어느 집 아내가 택시비도 마음대로 못 써?”

“말해 봐.”

“이게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야?”

도준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생활비 많이 줬지.”

“매달 꼬박꼬박 보내줬잖아.”

“근데 알아?”

“그 돈 받을 때마다 내가 당신 아내가 아니라 관리 대상 같았어.”

“필요한 만큼 주고.”

“필요 없으면 내버려 두는.”

“그 정도 존재.”

도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넌 그렇게 생각했어?”

그는 갑자기 내 턱을 붙잡아 올렸다.

“이혼하고 싶다고?”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나 없이 어떻게 살려고?”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아팠다.

나는 그의 손을 밀어내려 했다.

그 순간 도준의 시선이 멈췄다.

내 왼손이었다.

비어 있는 약지.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반지는?”

“팔았어.”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버지 병원비 필요했거든.”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도준 씨.”

“우리 이혼하자.”

말을 꺼낸 순간 이상하게 힘이 빠졌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무려 십 년 동안.

그날 밤이 없었다면.

제주도의 불꽃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버텼을지 모른다.

사랑받지 못하는 결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사람 곁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설령 이혼 후 삶이 더 힘들어진다 해도.

후회는 없었다.

나는 캐리어를 끌어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준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감정이 스쳤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등을 돌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을 것이다.

짐을 챙겨 방을 나서려던 순간.

갑자기 몸이 허공으로 들렸다.

“도준 씨!”

순식간이었다.

도준은 나를 안아 들어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숙였다.

숨결이 가까워졌다.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도준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비웃듯 말했다.

“결국 민서 때문이잖아.”

“솔직해져.”

“질투하는 거잖아.”

나는 눈을 감았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까지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의 진실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선택했는지도.

전부.

“그 자리.”

도준이 낮게 말했다.

“재벌가 며느리 자리.”

“네가 그렇게 원해서 얻은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이제 와서 싫다는 건데?”

손끝이 떨렸다.

결국 그는 아직도 믿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도준은 무시했다.

하지만 벨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곧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준 오빠…”

“다리가 너무 아파요.”

“잠깐만 와 주면 안 돼요?”

민서였다.

도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결국 말했다.

“알겠어.”

“지금 갈게.”

짧은 한마디.

그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잠깐 다녀올게.”

넥타이를 고쳐 매며 말했다.

“이혼 얘기는 나중에 하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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